| 성명 | 추모의 글 | 시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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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미향 | 존경하는 이이효재 선생님, 1992년 1월, 제가 정대협에 간사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 정대협 공동대표셨던 이이효재 선생님은 20대 청년이었던 제게는 너무나 큰 분이셔서 두려움을 갖게 한 그런 존재셨습니다. 그런 제게 실무적인 일부터 직접 세계를 뛰어다니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이끌어 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은 참 거룩해 보였습니다. 후배 활동가에 대해서도 참으로 따뜻한 선배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의 후배와 제자들을 칭찬하시기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20대 새파란 청년이었던 저도 선생님 눈에 만족스럽지 못한 활동을 했을 수 있을텐데도 늘 칭찬과 격려로 활동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1992년, 28년 전이네요. 추석을 앞두고 선생님은 이대 후문 한 카페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간사가 저 혼자였기에 사무실 문에 ‘잠시 외출중’이라고 붙이고 약속장소에 갔는데, 그 곳에서 선생님은 윤정옥 선생님과 함께 제게 봉투를 하나 주셨어요. 추석 보너스라고 하시면서… 감동의 눈물이 났습니다. 1992년 당시 정대협의 경제적 상황이 안좋았으니 인건비를 넉넉하게 줄 수는 없고 두 분이 그렇게 개인적으로 모아서 추석 보너스를 주신 것입니다. 돈 보다도 그 소소함을 챙겨주시는 선생님께 저는 ‘사람냄새 나는 운동’을 생각했고 ‘나도 그래야지’그렇게 마음먹었습니다. 제주도에 계실 때, 진해에 계실 때, 찾아뵈면 우리 민족의 분단상황에 대해, 역사 속에, 역사위에 서 있어야 할 여성운동에 대해 이야기하시며 눈동자에 빛을 내시던 선생님. 매번 만날 때마다 그 멈추지 않는 정신과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지식세계가 참 존경스럽게 다가왔습니다. 뉴스를 통해 정대협 소식을 접하실 때마다 전화를 주시고, 메시지를 직접 손으로 써서 보내주시며 느낀 그대로의 마음을 전해주시고, 축복해 주시고… 분에 넘치는 너무나 큰 사랑을 주셨습니다. 선생님, 참 고마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간사로서 선생님을 대표로 만나 함께 활동했던 행운을 누렸고 선생님으로부터 우리 민족의, 여성의, 민중의 역사에 대해 더 뜨거운 마음으로 보게 되었고, 그리고 여전히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을 살고 싶게 해주셨어요.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살고 싶어 하셨던 평화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그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윤미향 올림. |
2020-11-04 |
| 신필균 | 한 역사가 되어주신 선생님, 선생님을 가까이 뵌 계기는 ’파워‘ 활동 이후입니다. 1969년 여름 우리들의 위장취업 소식이 이화에 물의를 빚으면서였죠. 그러나 더 가까이는 73년 봄이었습니다. 69년 기독교학과 중심으로 만들어진 ‘더 파워‘는 노동권, 주거권 운동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시작되어, 1970년대 말쯤 다양한 후배들이 모여 ’봄뫼‘로 발전 확대되었습니다. 그리고 87년 6월 항쟁까지 그 맥을 이어왔답니다. 사진은 오랜만에 재회한 파워·봄뫼의 선후배가 선생님 생존 시 인사를 드리자고 2010년 여름 진해를 방문했을 때의 기억입니다. 그중 일부만 찍혔어요. 선생님은 일찍이 ’사회평등‘의 이상을 이루기 위한 정치·사회구조의 문제를 제기하셨으며 그래서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에 대한 이해가 깊으셨습니다. 스웨덴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당시 통일사회당 당수 김철 선생님과 친분이 있으셨고 당신 제자를 그분께 소개해 주셨습니다. 1973년 5월 사회학과 과장실에 저를 불러 앉히시고 스웨덴 유학의 길을 설득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최대한 나지막한 소리로 의미심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유신 직전 그 삼엄했던 시절, 너무나 갑작스러운 제안 앞에 두렵고 짜릿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선생님은 국제회의차 한국을 벗어나시면 빠짐없이 편지를 보내 주셨습니다. 한국 상황을 빼곡히 전해 주셨습니다. 매번의 편지는 외로움을 달래는 가장 큰 힘이 되곤 했었습니다. 70년, 80년대 말까지 ’스웨덴 한국민주화연대‘(South Korea Committee), ’기독자민주동지회‘(International Christian Network for Democracy in Korea), ’국제사회민주주의연맹‘(Socialist International) 등 선생님이 격려해 주셨던, 제가 활발히 참여했던 조직들 기억하시죠? 스웨덴 생활의 절반이었던 해외에서의 한국 민주화운동은 항상 선생님이 끈의 또 다른 한편이셨습니다. 선생님이 일궈놓으신 모든 활동과 메시지를 가슴에 새기며 이제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수많은 제자 중 한 사람이 된 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잠들 때 백번씩 되 뇌시던 선생님의 기도 저도 이어 드립니다. 이젠 편히 쉬십시오. |
2020-10-23 |
| 김은지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2020-10-20 |
| 안재은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의 거룩한 뜻 이어받아 이 땅의 여성들이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날까지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0-10-19 |
| 고은정 |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의 뜻 잊지 않겠습니다. |
2020-10-16 |
| 정오리 | 선생님의 노고를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세요. |
2020-10-16 |
| 이자연 | 선생님 감사합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2020-10-16 |
| 이혜정 | 선생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2020-10-15 |
| 공보성 | 정말 감사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2020-10-15 |
| 유승화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2020-10-14 |
| 박지성 | 선생님 감사합니다.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
2020-10-14 |
| 이영주 | 고 이효재 선생님의 고귀한 뜻과 헌신적인 실천을 영원히 기억하고 감사하겠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우리 나라가 이 세상이 한발자국 성큼 나아갔고 너무나 많은 여성과 남성들이 스스로의 운명의 주인됨을 깨닫고 행복해질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명복을 빕니다. |
2020-10-14 |
| 김지아 | 여성을 위해 힘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2020-10-14 |
| 다은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덕분에 많은 여성들이 살았습니다. |
2020-10-13 |
| 노진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2020-10-13 |